‘불완벽함’이 가장 ‘완벽함’일수도 있겠다라는 의견

DG
4 min readMay 1,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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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모노노케 히메를 본 건 두번째이다. 첫번째는 초등학생때 그냥 누나가 틀어줘서 보았었다. 그리고 이번에 영화보고 영어로 발표하기 스터디 덕분에 한 번 더 볼 기회가 생겨서 보았다. 모노노케 히메라는 영화에는 자연과 인간의 대립적인 구도를 보여준다. 태초에 주어진대로 자연에 순응하며, 이 섭리를 거스르지 않고 따르려는 야생동물들과, 한정적인 자원을 가능한 많이 차지하여 많은 이윤을 남겨서 본인들의 삶의 질을 더 좋게 만들으려는 인간의 구도가 그것이다.

어렸을 때, 영화를 처음 보았을때는 야생동물과 모노노케 히메(작중이름 산)가 선해보였고, 정의를 구현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굳이 그들의 삶의 영역을 침범하여서 자연환경을 파괴하고, 사슴신을 죽이려드는 인간들은 ‘악’ 이라고 결론지었었다. 하지만, 이번에 영화를 볼때에는 인간들의 입장이 이해가 갔다. 작중 ‘에보시’라는 등장인물이 있는데, 이 인물은 인간 무리들을 지휘하는 지휘자의 역할로 나온다. 본인이 ‘여자’이기 때문에 그런 이유도 있겠지만, 당시 시대적 배경 상황을 생각해보면 매우 현명하고 이상적인 ‘지도자’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남자와 여자간 성별에 어떠한 차별도 두지 않으며, 백성들에게 본인들에게 잘 맞을 것 같은 역할을 부여한다. 게다가, 마을 여성 구성원들의 대부분은 이전에 노예로 팔리던 신분이 천한 여성들이었으며, 이 ‘에보시’라는 인물은 그들을 본인의 사비로 고용하여서 그들에게 인간적인 대우를 해주고, 본인의 역할을 잘 수행해주기만 한다면 그에 합당한 대접을 해준다. ‘에보시’는 한정되어져 있는 자원을 남들보다 한 발 앞서 쟁취하여서 본인의 사람들에게 더 좋은 삶을 제공해주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다면 어떤 지도자가 자신의 백성들을 위해서 자신의 백성들이 아닌 다른 것들의 삶의 터전을 빼앗고 고통을 준다면 그 지도자의 폭력은 과연 정당화 되어질 수 있는것인가? 관점을 살짝 꼬아보자. 작중에 선한 역할처럼 나오던 멧돼지들과 늑대무리들을 생각해보자. 그들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신들보다 약한 토끼나 사슴, 소 같은 약한 동물들의 삶의 터전을 빼앗고, 그들의 목숨을 빼앗아가며 삶을 영위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도 악인가? 애시당초에 ‘선과 악’은 누가 정의를 내리는 것일까? 애시당초에 ‘선과 악’ 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지 않을까? 나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은 나에게 주관적으로 악한 무언가이다. ‘순수악’ 그 자체는 아닐 확률이 매우 높다는 말이다.

작중에는 ‘사슴신’이라는 신이 등장한다. 해당 세계관에서 가장 ‘절대자’에 가까운 신이다. ‘사슴신’은 자연과 인간의 대결에서 그 어떠한 행동도 취하지 않는다. 심지어, 자신의 목을 가져가기 위한 한 낱 인간의 총조차 막지 못하고 허무하게 사망해버리기 까지한다. 어렸을때 가장 이해가 가지 않았고 충격적인 장면이었는데, 이번에는 어느정도 이해가 갔다. 애시당초에 ‘선과 악’, ‘정의’는 모두에게 주관적인 가치이기 때문에, 이 세계관의 ‘절대자’라 하더라도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사슴신’은 작품의 시작부터 끝까지 ‘인간’ vs ‘자연’ 의 구도에서 단 한번도 ‘인간’ 혹은 ‘자연’의 편에 서지 않았던 것이다. ‘인간’은 본인들의 더 나은 삶을 추구하기 위해서 자연에 폭력을 가함으로써 ‘인간’들의 정의를 실현하였던 것이고, ‘야생동물’들은 본인들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인간에게 폭력을 가함으로써 ‘야생동물’로써의 정의를 실현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작중 유일하게 ‘완전한’ 존재였던 ‘신’만이 아무런 정의도 실현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신은 ‘완벽한’존재여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추구한 이상적인 세계는 어떠한 모습이었을까? 난 주인공인 ‘아시타카’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추구한 이상적인 세계관을 지닌 인물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아시타카’는 작중에서 ‘순수선’ 에 가장 가까운 인물이다. ‘인간’ 과 ‘자연’ 모두의 입장을 이해하고, 그 둘의 ‘구분’을 없애고 모두가 함께 조화를 이루며 ‘공존’할 순 없을까 끊임없이 고민하고 행동을 취한다. 그렇다면 작중 인물의 ‘가치관’이나 ‘비중’으로 미루어보아서 작품의 제목은 오히려 ‘모노노케 히메’가 아닌 ‘아시타카’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극중 ‘모노노케 히메(산)’은 ‘인간’들에게도 환영받지 못하고 ‘야생동물’들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가장 ‘불완전한’ 등장인물로 그려진다. 그와 동시에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추구하는 가장 ‘이상적인’ 세계관에 가장 가까운 인물이기도 하다. 때문에 작품의 제목이 ‘아시타카’ 가 아닌 ‘모노노케 히메’가 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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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DG

한국의 iOS 개발자이다. 강아지와 운동을 좋아함. github: https://github.com/donggyus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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